jjalbang.co.kr 사람을 바라보는 두 시각-성선설과 성악설 > jjalbang3 | jjalbang.co.kr report

사람을 바라보는 두 시각-성선설과 성악설 > jjalbang3

본문 바로가기

jjalbang3


[[ 이 포스팅은 제휴마케팅이 포함된 광고로 커미션을 지급 받습니다. ]


사람을 바라보는 두 시각-성선설과 성악설

페이지 정보

작성일 20-06-14 01:13

본문




Download : 사람을 바라보는 두 시각-성선설과 성.hwp




자식이 아비를 죽이는 자가 있고, 신하가 인군을 시해하는 자가 있어 윤리강상(倫理綱常)이 땅에 떨어져 있음에 순자는 개탄을 금할 수 없었다. 전쟁은 백성들에게 병역의 의무 뿐만 아니라 불가피하게 고율의 정세를 가져왔으며 그 결과 수많은 백성들이 기근의 해에는 아사하였고 풍년에도 비참한 가난을 겪어야 했다. 전쟁의 규모는 더욱 커져 사회 경제에 끼친 손실이나 각 국의 백성들에게 가져다준 재화는 더욱 심해졌다.


.





사람을 바라보는 두 시각-성선설과 성악설 사람을 바라보는 두 시각-성선설과 성악설 사람을 바라보는 두 시각-성선설과 성악설 사람을 바라보는 두 시각-성선설과 성악설




.
사람을 바라보는 두 시각-성선설과 성악설

사람을 바라보는 두 시각-성선설과 성악설
사람을 바라보는 두 시각-성선설과 성악설
사람을 바라보는 두 시각-성선설과 성악설
다.
사람을 바라보는 두 시각-성선설과 성악설
사람을 바라보는 두 시각-성선설과 성악설
전쟁으로 인한 사회적․정치적 혼란, 생산력의 빠른 발전, 경제의 전례 없는 번영, 사회제도의 거대한 變化(변화), 제후국들간의 통일 추세, 학술사상에서의 백가쟁명과 상호의 융합, 이 모든 것이 바로 맹자와 순자가 생활한 시대의 큰 배경이라 할 수 있다
.
레포트 > 인문,어학계열
설명

Download : 사람을 바라보는 두 시각-성선설과 성.hwp( 49 )


순서

이런 문제들에 대하여 전국 시기에 많은 사상가들(제자백가(諸子百家)또는󰡐백가쟁명(百家爭鳴)󰡑이라는 말처럼, 이 시대는 China 사상사상(思想史上) 드물게도 그 활동이 활발했던 시대였다.

순자는 극도의 정치적․사회적 혼란과 부패의 결과(당시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어 감에 따라 사람은 거의 짐승과 다를 것이 없었다고 한다. 정치적, 사회적 변동을 배경으로 하여, 몰락한 귀족의 자손을 비롯해 상공업자나 농민들도 입신출세하기 위하여 군주나 유력 인사에게 접근하여 법률, 군사, 외교 등 각자 재질에 따라 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자가 속출하였다.
이런 전례 없는 잔혹한 전쟁은 歷史의 흐름을 충동하는 산파적 역할도 하였는데 낡은 생산 방식을 타파하였고, 각 국을 통일이 되게 함으로써 정치, 군사면의 대립을 없애고 봉건화 대통일 국면의 출현을 가속화 시켰다. 전쟁 초기의 대국이 소국을 합병하던 것으로부터 대국집단과 집단이 좌우로 연합하였으며, 또한 종횡으로 연합하여 진(秦)나라가 동방 6국을 하나 하나 소멸하는 통일 전쟁으로 발전하였다. 전국 시대의 사회변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어떠한 방식으로 봉건제의 통일을 실현할 것인가? 어떻게 통일된 봉건제국에게 완전한 통치제도와 사상 가치 관념을 확립시켜 이로서 봉건제국의 공고와 안정을 하루 빨리 실현하겠는가?
사람을 바라보는 두 시각-성선설과 성-8033_01_.jpg 사람을 바라보는 두 시각-성선설과 성-8033_02_.jpg 사람을 바라보는 두 시각-성선설과 성-8033_03_.jpg 사람을 바라보는 두 시각-성선설과 성-8033_04_.jpg 사람을 바라보는 두 시각-성선설과 성-8033_05_.jpg
사람을 바라보는 두 시각-성선설과 성악설

순자 시대에 이르러서는 정치 및 사회적 혼란이 맹자 시대에 비해 오히려 더 심해졌으며 제후들의 병탐전쟁도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되었다. 한편에서는 큰 나라들(전국칠웅 : 연(燕), 제(齊), 한(韓), 위(魏), 조(趙), 초(楚), 진(秦))이 황제 자리를 노리고 서로 싸웠으며, 또 한편으로는 이러한 사태 속에서 점차 약소한 나라들은 자위와 생존 투쟁을 벌려야 될 형세에 몰려갔다.)은 격렬한 쟁론을 벌였다.



이 시기의 사상가들은 비록 서로 질책하고 서로 논쟁하였지만 정치 분야에서 오래가지 않아 나타난 통일될 형세에 adaptation(적응) 하였는데 그들 사이에서는 서로의 견해를 흡수하고 서로 융합되는 전례 없던 추세가 나타났다.
맹자와 순자가 생활하였던 전국시대 중기에서 말기까지는 중앙정부인 주왕실이 지배권을 잃고 여러 봉건 국가들 사이에 권력투쟁이 끊이지 않았던 시대로 전쟁이 가장 돌출한 특징이다. 이때에 유가, 도가, 법가, 음양가 등 학파들의 계선과 각자의 전통의 차별은 여전히 존재하였지만 대부분은 자기 학파의 주요한 전통을 기초로 하고 다른 학파의 장점을 흡수하여 통일된 봉건사회의 건립과 이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하여, 난무하는 여러 가지 학술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arrangement)하고 학파가 갈라진 기초로부터 각자 새로운 종합을 실현하였다.)로 사람은 선천적으로 성품이 악하다는 성악론을 주창하기에 이르렀다.
REPORT 73(sv75)



해당자료의 저작권은 각 업로더에게 있습니다.

jjalbang.co.kr 은 통신판매중개자이며 통신판매의 당사자가 아닙니다.
따라서 상품·거래정보 및 거래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 이 포스팅은 제휴마케팅이 포함된 광고로 커미션을 지급 받습니다 ]]

[저작권이나 명예훼손 또는 권리를 침해했다면 이메일 admin@hong.kr 로 연락주시면 확인후 바로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If you have violated copyright, defamation, of rights, please contact us by email at [ admin@hong.kr ] and we will take care of it immediately after confirmation.
Copyright © jjalbang.co.kr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