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은사(感恩寺) 터 - 용이 지키는 나라, 무사가 된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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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1-03-31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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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 , 감은사(感恩寺) 터 - 용이 지키는 나라, 무사가 된 탑인문사회레포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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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레포트/인문사회
1. 머릿말
2. 대왕암(大王岩; 대왕이 묻힌 바위)
3. 감은사(感恩寺; 은혜에 감사하는 절)
4. 이견대(利見臺; 용을 만나 보아 이롭다는 누각)
5. 만파식적(萬波息笛)
2. 대왕암(大王岩; 대왕이 묻힌 바위)
토함산 뒤쪽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대종천을 이루고 그 물줄기가 동해로 흘러드는 감포 앞바다. 한 변의 길이가 약 3.5m 되는 못 안에는 거북이 등 모양의 길이 3m, 폭 2.2m의 돌이 얹혀져 있다 못 안의 물은 돌을 약간 덮을 정도이며, 거센 파도에 아랑곳없이 항상 맑고 잔잔히 흐르도록 되어 있다 동서남북 사방으로 트인 십자형의 수로를 통하여 동쪽으로 들어온 물이 서쪽으로 난 수로의 턱을 천천히 넘어 다시 바다로 흘러나간다.
사실 대왕암은 오래 전부터 문무왕의 시신을 화장한 납골을 뿌린 산골처로 알려져왔으며, 주변 어부들은 이미 이곳을 신성하게 여겨 근처에도 잘 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대왕암이 문무왕의 수중릉으로 둔갑해 처음 발견된 것처럼 신문에 대서특필된 것이다. 문무왕의 산골처(散骨處; 화장한 뼛가루를 뿌린 곳) 혹은 수중릉으로 알려진 대왕암이다.
못 안의 돌 밑에 문무왕의 유골 장치가 있다는 설도 있지만 이는 본격적인 발굴 조사로 증명된 사실이 아닐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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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암과 감은사 및 이견대에 대해서 작성했습니다.
멀리서 보는 대왕암은 평범한 바위섬이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바위 한가운데가 못처럼 패어 있고 둘레에 자연 암석이 기둥 모양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워진 모습이다. . 다만 외곽을 둘러싼 바위 안쪽에 인위적으로 바위를 따낸 흔적이 있는 것으로 그렇게 추정할 따름이다. 만약 이 장치가 유골을 묻은 것이라면 세계에서도 드문 수중릉이 될 것이지만, 이는 박정희 군사정권이 history(역사) 적 사실을 왜곡하여 정권 안보에 이용하려 한 부끄러운 일일 뿐이다. 삼국을 하나로 통일하는 대업을 마무리하여 명실공히 통…(省略)
감은사(感恩寺) 터 - 용이 지키는 나라, 무사가 된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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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감은사
순서
대왕암과 감은사 및 이견대에 대하여 작성했습니다.
문무왕(金法敏)은 아버지(태종 무열왕 김춘추) 대의 백제 정벌(660년)에 이어 고구려 정벌(668년)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이후 신라에 대한 당의 야심을 알아채고 그 세력을 몰아내는 전쟁까지 치러냈다. 봉길리 해수욕장이 들어선 이곳 해안에 서면 바다 쪽으로 약 200m 떨어진 곳에 바다 경치를 돋우는 아담한 바위섬이 눈에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