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별로 나타나는 고려 자기(高麗磁器) 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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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 항아리는 고려태조의 태묘(太廟)에서 제향(祭享)때 쓰이는 그릇으로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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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순서
1. [10세기]
2. [11세기]
3. [12세기]
4. [13세기]
5. [14세기]
1. [10세기]
청자와 백자가 탄생되는 시기지만, 역시 토기가 더 널리 쓰이고 있었음을 지금까지 남아있는 다양한 고려도기를 보아도 알 수 있다아 이 도기의 형태가 청자의 형태와 같은 점으로 미루어, 이때에 청자도 만들어질 기운이 무르익었음을 시사해 준다. 반자질로 된 백자기술도 개발도상에 있었음을 순화사년병 항아리를 보아도 알 수 있다아
2. [11세기]
이 시대에 송나라의 도자기는 그 정교함, 치밀함과 의장(意匠)의 세련됨이 가장 높은 수준에 달해 있었다. 어설프고 수준이 낮은 저질품을 선믈로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 이것은 백자로 보아야 좋다는 주장이 있다아 즉 태토(胎土)가 회백색의 자질(瓷質)에 가까워서 불안전 백자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미 청자가 만들어지고 있었을 때, 토기도 여전히 제작되고 있었으리라 추측된다 청자는 993년에 만들어진 순화사년명(淳化四年銘)항아리가 지금까지 전한다. 이것이 만들어진 연대로 보아, 당말 오대의 정요백자의 influence(영향)도 충분히 고려될 수 있다아 그리고 이 무렵에 청자도 상당히 발달하였을 것으로 추정할 data(資料)도 있다아
11세기 초 거란의 성종왕 여경릉에서 발견된 고려청자 음각문편이 바로 그것이다. 이 무렵 거의 40년간 왕위에 있었던 문종(文宗)은 현명한 왕으로 송나라의 문물과 직접적이고 폭넓은 접촉을 가지게 되어, 고려의 culture 진작(振作)의 새 기운을 불러일으켰다. 11세기 초 외국 왕실에 선물로 청자를 보낼 수 있었다는 사실은 벌써 청자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져 있었음을 뜻한다. 그렇다고 하여 청자가 일반화되지는 않아서 10세기 말기에 이르기까지 그 기술은 많이 연마되었고, 따라서 초기적인 청자류가 제작되었다.
이 항아리의 유약은 담록조의 황회색계(黃灰色系)여서 청자로 보았다. 이것이 고려자기의 수준을 높이는 데 크게 공헌하였는데, 당시에 제작된 도기를 보아도 알만하다.